독서클립/시와 수필

타는 목마름으로

어산(於山) 2019. 3. 7. 14:57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작가] 김지하(1941~ )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의 본명은 김영일로 원주중, 중동고와 서울대 미학과 재학 중에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지하는 1969년 발표한 데뷔작 <황톳길>에 쓴 필명이었다. 졸업 후 동국대와 원광대 교수를 지냈으며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위이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 항거한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


'독서클립 >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처구니  (0) 2019.10.26
어떤 경우  (0) 2019.03.14
  (0) 2019.03.07
  (0) 2019.03.07
남으로 창을 내겠소  (0) 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