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작가] 김지하(1941~ )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의 본명은 김영일로 원주중, 중동고와 서울대 미학과 재학 중에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지하는 1969년 발표한 데뷔작 <황톳길>에 쓴 필명이었다. 졸업 후 동국대와 원광대 교수를 지냈으며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위이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 항거한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