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들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작가] 김수영(1921~1968)
그는 이 시를 남기고 술에 취한 채 길을 걷다가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생전에 펴 낸 유일한 시집은 <달나라의 장난>이었다.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상대에 유학했다. 김수영은 뛰어난 시인일 뿐 아니라 매우 독창적인 시론가로 <시여 침을 뱉어라>(1968), <반시론>(1968) 등을 내기도 했다. '예술이란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볼온하다'는 그의 주장대로 김수영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예술가를 지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