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대부(大夫)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아버지와 형이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을 받아 죽음을 당하자 복수할 뜻을 품고 오나라로 망명했다. 어느 날 초나라의 대신 백주려(伯州黎)가 다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자 그의 아들 백비(伯嚭)도 오나라에 귀순해 왔다. 오자서의 천거로 백비 역시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같은 대부인 피리(被離)가 오자서에게 백비를 평하여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아 살인을 할 관상이니 그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오자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며 피리의 충고를 무시했는데, 훗날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무고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과연 관상은 믿을만한가?
한 때 우리나라 모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관상을 본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만큼 관상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의 상은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는 후천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영양 상태나 직업의 종류 등 사는 형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인생관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도 변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인의 얼굴은 과거와 비교하여 크게 변했다. 아마도 식생활의 개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50년대와 60년대 출생자의 얼굴은 체격과 함께 전체적으로 커졌고, 70년대 이후의 출생자는 키와 체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머리의 앞뒤 길이가 길어지면서 턱은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러진 음식물의 탓이라고 분석하는데, 턱뼈가 작아지고 이로 인해 광대뼈가 덜 튀어나오는 쪽으로 발전했다. 조선시대에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 기술된 남성의 평균 키는 163.4cm인데 비해 산업자원부가 최근 조사한 ‘한국인 인체치수’에 의하면 20대 남성의 키는 173.3cm로 약 10cm 커졌다. 체형도 이전에 비해 비만형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상에 관해 처음으로 논문을 썼다니 놀랍다. 그는 논문에서 기질을 나타내는 외모나 성격의 일반적 특성 등을 동물과 비유해 기술했다. 예를 들면, 개처럼 코끝이 날카로우면 성미가 급하고 쉽게 화를 내고, 사자처럼 둥글고 뭉툭하면 관대하며, 코가 가늘고 휘어지면 독수리 같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관상을 통해 직관적 인지를 얻어내고 예언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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