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꼬별곡
I.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로 시작되며 고려시대의 속요로 널리 알려진 청산별곡은 기(1연): 이상향으로 설정된 청산으로의 현실도피, 승(2-4연): 당시의 어려운 속세에 있어서의 삶의 고독과 비애, 전(5-7연): 극복에 대한 기원, 결(8연): 술을 통한 체념 및 구원의 길로 구성하여 시적 자아가 처해 있는 현실적 고통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도피적 공간으로서의 '청산'과 '바다'를 설정하고, 그곳을 지향하는 이른바 상황적 역설을 통해 갈등의 정서적, 언어적 해결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빼어난 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향의 정의에서 결정적 오류를 본다. 청산에서는 맛있는 열매를, 바다에서는 해초와 굴조개 등을 따먹는 즐거움만을 강조한 나머지 당시에도 엄연히 고통받고 있었을 터인 이 땅의 일만 이천 치질환자들의 싸는 아픔을 도외시한데 있다. 싸지 않고는 먹을 수도, 살 수도 없다는 것은 동서와 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이다. 마음껏 즐겁게 쌀 수 있는 곳이야말로 그들의 이상향이며 그들의 하늘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오줌이랑 똥이랑 싸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II.
4월 30일
아~ 육이오때 인민군덜헌티 뺏긴 서울을 되찾는디도 석달이 다 안걸렸다고 하던디 에~ 만 넉 달만에 마지막 똥꼬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나럴 이렇게 환영혀 주시니 몸둘바럴 몰르것습니다. 여러분덜 참 고맙습니다. 에 입이사 가죽이 모질래서 뚫어논 구멍이 아닝께 말이사 바로 허라고 혔는디, 괴기는 씹고 술언 마셔봐야지 그 맛을 안다 그 말이여. 그려서 쫌 챙피허기는 혀도 내가 그간에 똥꼬수술헌 얘기를 헐틴게 닭 먼산보대끼 허덜 말고 정신채려서 듣더라고. 그대신 차덜이 뻔질라게 댕기는 킁길인게 나가 말얼 싸게싸게 헐 것이고만이. 남자는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그간에 내가 수술을 세번 혔는디 그게 쉽게 얘그혀서 똥꼬에 병이 세가지나 있었다 그말여. 긍게 27년된 치질(치핵)허고 12월에 생긴 항문주위농양허고 그것이 발전한 치루까지 인간의 똥꼬에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저분헌 것덜이 정신만큼은 백합처럼 지순허먼서 꿈과 희망을 안겨다 주는 꽃-라일락 같은 나럴 임진년에 왜놈들처럼, 병자년에 청나라 오랑캐덜처럼 공격해 왔다 그것이여. 1차, 2차 그리고 3차 쎄톤제거수술까지… 전쟁은 명분으로 시작해서 광적인 살인과 파괴를 거친 다음 잿더미로 끝나고, 그런 전쟁만큼 험한 수술은 나의 여생을 거는 것이라서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것이지만 이게 무신 일제치하의 독립운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항문에 걸린 병이다 보니 내놓고 말은 안혀도 속으로는 다들 얼매나 불결허면 그럴까… 쯔쯔쯔하는 것 같어서 자존심깨나 상험스롱도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똥꼬에 깃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말이여. 1월30일 처음 척추에 마취제 한방 맞고는 엎드려서 무장해제 당한 채로 이 처녀한티 똥꼬 짝짝 벌리고 저 아줌마한티 거시기 보여주고, 거기다가 의사는 로마시를 불질러 놓고 그 구경을 하면서 시상을 얻는 기발한 천재시인 네로처럼 가유점화(加油點火)하며 능란하게 총검술을 해대고. 그것 참 요상헌 것은 병원에서는 남자가 의사 가운을 입으면 금방 세게 보이고 여자가 간호사 가운을 입으면 갑자기 야무지게 보여서 쉽게 주눅이 든단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나럴 동네 강아지 데꼬 놀디끼험서 내 가엾은 똥꼬를 유린하였고 나는 그 동안에 세존께서 말씀하신 사고(四苦: 生老病死)의 의미를 씹고 있었단 말이시. 그러고 나니 한달 반 동안의 강요된 휴식기간 동안에는 물총질도 어려웠고만. 새마을 운동 노래도 못 들었어. 외래진료 한번하고 3월 17일에 2차 수술. 병원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어. 이것은 내가 선택한 혁명의 길이다. 혁명은 배움의 길고 짧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강철같음과 피의 뜨거움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다. 2박3일의 입원을 마치고 신통하기 짝이 없는 진통제 덕분으로 나이롱 환자처럼 의연하게 퇴원혔는디, 이내 약기운이 떨어짐서부터 사람 환장헐 통증에 그만 무릎을 꿇고 나의 경솔한 선택을 후회혔단 말시. 긍게 그것이 얼매나 아프냐하면… 아녀 아녀 나 말로는 다 못혀. 생각만 혀도 속이 뒤집어지는고만. 어떤 여자덜언 애기날때다 비하먼 양반이라는디, 나사 안당혀봤응게 거기까지는 모르것지만 특히 대변 한 번 볼라치먼 눈물 콧물이 제절로 나오고 이런 의젓짠은 일이 따로 없더랑께. 어릴 적에 동네 시장에서 팔던 그 만병통치 빨강약이라도 배꼽에다가 발르라고 허등가 아니먼 상처난디는 다시없는 다이아찐가루라도 뿌리라고 주등가 허먼 좋것는디… 워째. 이 치루는 상처를 직경 3센티미터만큼이나 크게 내놓은 맨살인디 아무 약도 안주냐 그것이여. 소염제도 3일치밖에 안주고. 어쨋거나 국방부시계도 가는디 안 가는 세월은 없는 법. 또다시 한달 반 동안은 김밥부인 옆구리 터졋네도 여대생몰카도 당체 마징가제트보담도 더 재미가 없더라 그 말이여. 마침내 4월 29일의 아침이 밝았고만. 지난번 외래 때 의사는 경과에 따라서는 한번 더 해야 될지도 모르며 따라서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언질을 했으므로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병원으로 가는 나는 속이 찜찜헌 것이 꼭 국민핵교 등교길에 할레붙는 개를 볼 때처럼 번민혔어. 저걸 띠어야 하나 그냥 학교를 가야 하나. 그냥 지나쳐 등교한 날은 늘 첫째 시간은 샘 말씀이 영 귀에 들어 오덜 안혔땅께로. 왜 개덜은 꼭 아침에만 그 짓을 할까? 수컷이 먼저 하자고 그랬을까? 아니먼 암컷이 먼저 꼬리를 흔들었을까? 아침은 먹고 하는 걸까? 지금쯤은 떨어졌으까? 덕순이도 말자도 보았을까? 내일 아침에도 또 그러먼 돌멩이를 던져 보까. 오늘 아침에는 왕대포집 과부댁이 설거지헌 물을 냅다 뿌렸는디도 안떨어지고 도망가데.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다. 피흘리기를 주저하고 아파하기를 두려워하면서 혁명의 열매만 따먹으려고 역사를 선택했다면 후세의 사가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해방된 민족이 주인인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선열들처럼 장작더미에 누워 쓸개를 먹는 고통을 감내하리. 그리하여 깨끗한 똥꼬를 되찿으리. 그리고 오늘 나는 여러분덜 앞에서 말할 수 있으니,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황량한 땅에서도 풀들은 다시 돋아나며 나무들도 잔가지들을 뻗쳐 올리며 초록의 잎을 매달고 있는 자연만이 무한한 생명의 경이로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깔끔하게 쪼글쪼글헌 것이 볼수록 이뻐죽것는 똥꼬가 신기허더먼. 약을 안발러도 이슬람교도덜 시간챙켜서 메카쪽으로 업드려 절허듯이 하루에도 멫 번씩 좌욕만 해주고 시간만 가면 상처가 아무는 치루자국도 놀랍고 혀서 미국LPGA의 구호 "positively amazing"이 생각난다고. 아~ 치질과의 전쟁 – 작전명: 내 똥꼬의 자유 – 이제 그 주요작전은 끝났으며 3주 후에는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선언할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똥꼬의 완전한 자유를 위하여 더욱 가열찬 의지로 투쟁에 나설 것을 여러분덜 앞에 맹세헙니다. "싸우자, 싸우자, 완치의 그날까지!" 뺀드부와 시민덜도 따라서 소리쳤다. "싸우자, 싸우자, 완치의 그날까지!" 연설을 마치면서 그 남자는 어서 집에 가서 찬물에 씨언허니 목간이나 한바탕하고 낮잠이나 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서하고등학교와 일강여고의 연합뺀드부는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덜은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가던 길을 다시 가고 있었다. 5월6일 마지막 외래에서 의사는 병원에 다시 올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III.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는 근본원리를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서 확립하고,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고 하면서 더욱이 정신은 사고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하면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의 실재적 구별도 확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된 실체로 세워지고 이 물심이원론에 의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싸야 하고 따라서 '나는 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出我在)'라고 주장한 분자(糞子)의 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렇듯이 인간에게서 심신결합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덕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이 물심분리와 심신결합의 모순 조정에 데카르트 이후 형이상학의 주요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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