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에 관한 짧은 생각
내가 어렸을 때는 사람들을 누구나 밥을 먹고 사는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이리로 유학 가서 중학교 수업시간에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듣기까지는. 다른 이들은 그 말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것이며 이를테면 자유라든지 골프 같은 것도 필요하다는 뜻으로 얘기했을지 몰라도 나는 비로소 밥 대신 빵을 먹고 사는 족속도 있다는 다양성을 깨닫게 된 충격의 명언이었다. 물론 밥을 안 먹고 빵을 먹고 사는 부류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더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고 우리처럼 끈기 있는 쌀로 밥을 지어 먹는 사람보다는 안남미를 먹는 사람이 더 많고 보통 쌀이라고 하면 지구인들의 대다수는 안남미로 이해한다는 것은 30대 중반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밥에다가 향료나 색깔을 넣어서 지어 먹는 녀석들도 있다는 것은 또 그 뒤에야 알았다. 그 뿐이냐? 우리는 밥이란 늘 수저로 먹는 것으로만 알았거늘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젓가락으로 먹고, 나는 상에 놓고 먹는데 그 놈들은 밥그릇을 들고 먹어야 정상이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손으로 먹는 것까지. 그 주제에 오른손 왼손 가려서 깨끗한 손만 쓴다는데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가 있다고. 물기 없는 맨밥만 손가락으로 먹는 것이야 나도 캠핑할 때 간혹 도구 없이 먹어 본 경험이 없진 않지만 카레를 잔뜩 넣어서 지저분하게 손가락으로 먹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도 안 이상하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를 보고 또라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그런데 내가 영국에 갔을 때 더 놀란 것은 그들은 밥도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아아 인간이 빵 만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이 그 말이었나. 세상 참... 나만 아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고 우리가 행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어제의 진실이 내일도 통할까? 세상의 대부분의 농부들은 볍씨를 직접 뿌리지 우리처럼 모내기를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벼를 재배할 것이다. 아니, 논이 아닌 공장에서 나오는 쌀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2002.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