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맹자

6. 등문공 하(滕文公·下) 5-7

어산(於山) 2018. 11. 9. 23:08


5.

萬章問曰, "宋, 小國也, 今將行王政, 齊楚惡而伐之, 則如之何?" 孟子曰, "湯居亳, 與葛爲鄰, 葛伯放而不祀. 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犧牲也.' 湯使遺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粢盛也.' 湯使亳衆往爲之耕, 老弱饋食, 葛伯率其民, 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 不授者殺之. 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 爲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爲匹夫匹婦復讎也.' '湯始征, 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 

만장문왈, "송, 소국야, 금장행왕정, 제초오이벌지, 즉여지하?" 맹자왈, "탕거박, 여갈위린, 갈백방이불사. 탕사인문지왈, '하위불사?' 왈, '무이공희생야.' 탕사유지우양. 갈백식지, 우불이사. 탕우사인문지왈, '하위불사?' 왈, '무이공자성야.' 탕사박중왕위지경, 노약궤식, 갈백솔기민, 요기유주사서도자탈지, 불수자살지. 유동자이서육향, 살이탈지. 서왈, '갈백구향.' 자지위야. 위기살시동자이정지, 사해지내개왈, '비부천하야, 위필부필부복수야.' '탕시정, 자갈재,' 십일정이무적어천하. 

만장이 물었다.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지금 왕도정치를 실천하려고 하는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미워해 송나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탕왕은 '박'이라는 지역에 살았는데, '갈'이라는 나라와 접해 있었다. 갈을 다스리던 제후가 방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탕왕이 사람을 시켜 '어찌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제물로 바칠 가축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탕왕이 그에게 소와 양을 보냈는데, 갈의 제후가 잡아먹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다시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그는 '제사에 쓸 곡식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탕왕이 백성들을 시켜 그 지역에 가서 농사를 지어주고, 노약자에게 먹을 것도 주었는데, 갈의 제후는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술과 기장, 벼를 빼앗아 가고, 반항하면 죽였다. 한 아이가 기장과 고기를 가지고 일터로 가는데, 그 그 아이를 죽이고 먹을 것을 빼앗았다. <서경>에서 '갈의 제후가 먹을 것을 나르던 아이를 해쳤다.'고 했는데 바로 이 사건을 말한 것이다. 그가 아이를 죽였으므로 탕왕이 갈을 정벌하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복수해 준 것이다.'라고 했다. 탕왕이 갈나라에서 시작해서 11개 나라를 정벌했지만, 천하에 적이 없었다.               

* 만장(萬章): 맹자의 제자이다.

** 박(亳): 지명이다.

*** <서경> 상서(尙書)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나온다.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之望之, 若大旱之望雨也.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誅其君, 弔其民, 如時雨降. 民大悅. 書曰, '徯我后, 后來其無罰!' '有攸不維臣, 東征, 綏厥士女, 篚厥玄黃, 紹我周王見休, 惟臣附于大邑周.' 其君子實玄黃于篚以迎其君子, 其小人簞食壺漿以迎其小人, 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而已矣. 太誓曰, ‘我武惟揚, 侵于之疆, 則取于殘, 殺伐用張, 于湯有光.' 不行王政云爾, 苟行王政,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 欲以爲君, 齊楚雖大, 何畏焉?"

동면이정, 서인원, 남면이정, 북적원. 왈, '해위후아?' 민지망지, 약대한지망우야. 귀시자불지, 운자불변, 주기군, 조기민, 여시우강. 민대열. 서왈, '혜아후, 후래기무벌!' '유유불유신, 동정, 수궐사녀, 비궐현황, 소아주왕견휴, 유신부우대읍주.' 기군자실현황우비이영기군자, 기소인단사호장이영기소인, 구민어수화지중, 취기잔이이의. 태서왈, '아무유양, 침우지강, 즉취우잔, 살벌용장, 우탕유광.' 불행왕정운이, 구행왕정, 사해지내개거수이망지, 옥이위군, 제초수대, 하외언?"

동쪽으로 정벌을 나가면 서쪽 오랑캐 나라의 백성들이 서운해 하고, 남쪽으로 정벌을 나가면 북쪽 오랑캐 나라의 백성들이 원망하며 '어찌 우리 나라는 정벌을 뒤로 미루는가?'라고 말했다. 큰 가뭄 끝에 비를 기다리듯 탕왕이 정벌하기를 원하고, 전쟁이 나도 상인들은 시장을 다시 찾고, 농부들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나라 군주는 죽여도 백성들은 위로해 주니, 때맞게 비가 내린 것처럼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서경>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주나라 무왕을 기다렸는데, 마침내 그가 왔으니 지금같이 힘들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그래도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제후가 있으므로, 동쪽으로 정벌을 나가 그 나라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었더니 검은 천과 누런 베를 그릇에 담아와 주나라 왕의 아름다움을 보며 오직 위대한 주나라의 신하로 복속되었다.'고 했다. 그 나라의 관료들은 검은 천과 누런 베를 그릇에 담아 주나라의 관료들을 맞이하고, 백성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주나라의 백성들을 대접했다. 이렇게 물과 불 속에서 백성들을 구하면서도 잔학한 자들만 처벌했다. <태서>에 이르기를, '우리 무왕이 위엄을 드높이고 국경을 치고 들어가서 잔학만 자만 처벌하니, 사람을 죽이고 영토를 확장해도 탕왕보다 더 빛이 났다.'고 했다. 왕도정치를 실천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진실로 왕도정치를 실천하기만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군주로 섬기려고 할 것이니 제나라와 초나라가 아무리 크더라도 어찌 두려워 하겠는가?"           

* <시경> 주서 무성편(周書 武成篇)에 나온다.

** <태서>는 <서경>의 주서에 실린 편명이다.


6.

孟子謂戴不勝曰, "子欲子之王之善與? 我明告子. 有楚大夫於此, 欲其子之齊語也, 則使齊人傅諸? 使楚人傅諸?" 曰, "使齊人傅之." 曰, "一齊人傅之. 衆楚人咻之, 雖日撻而求其齊也, 不可得矣, 引而置之莊嶽之閒數年, 雖日撻而求其楚, 亦不可得矣. 子謂薛居州, 善士也, 使之居於王所. 在於王所者, 長幼卑尊皆薛居州也, 王誰與爲不善? 在王所者, 長幼卑尊皆非薛居州也, 王誰與爲善? 一薛居州, 獨如宋王何?"

맹자위대불승왈, "지욕자지왕지선여? 아명고자. 유초대부어차, 욕기자지제어야, 즉사제인부저? 사초인부저?" 왈, "사제인부지." 왈, "일제인부지. 중초인휴지, 수일달이구기제야, 불가득의, 인이직지장악지한수년, 수일달이구기초, 역불가득의. 자위설거주, 선사야, 사지거어왕소. 재어왕소자, 장유비존개설거주야, 왕수여위불선? 재왕소자, 장유비존개비설거주야, 왕수여위선? 일설거주, 독여송왕하?" 

맹자가 대불승에게 말했다. "당신 나라의 왕이 선하기를 바랍니까? 내가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여기 초나라의 대부가 있는데, 자기 아들이 제나라 말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제나라 사람을 불러 가르치도록 하겠습니까?" 대불승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에 맹자가 말했다. "제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치는데, 초나라 사람들 여럿이 옆에서 떠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때리면서 제나라 말을 가르쳐도 말하지 못하지만, 장악의 거리에 끌고 가서 몇 년만 지나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때리며 초나라 말을 하라고 해도 역시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설거주를 선한 선비라고 하며 송나라 왕의 거처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왕의 거처에 있는 어른과 아이, 천민과 존귀한 사람이 모두 설거주처럼 선하다면, 왕은 누구와 함께 불선을 행하겠습니까? 반대로 왕의 거처에 있는 어른과 아이, 천민과 존귀한 사람이 모두 설거주처럼 같이 선하지 않다면, 왕은 누구와 함께 선을 행하겠습니까? 설거주 한 명으로 혼자서 송나라 왕을 어찌 하겠습니까?"  

* 대불승(戴不勝): 송(宋)나라의 대신이다.

** 장악(莊嶽): 제(齊)나라의 수도의 거리 이름이다.

*** 설거주(薛居州): 대불승의 추천으로 당시의 송나라 강왕(康王)을 거처에서 보필하던 어진 신하이다.


7.

公孫丑問曰, "不見諸侯何義?" 孟子曰, "古者不爲臣不見. 段干木踰垣而避之, 泄柳閉門而不納, 是皆已甚, 迫, 斯可以見矣. 陽貨欲見孔子而惡無禮, 大夫有賜於士, 不得受於其家, 則往拜其門. 陽貨矙孔子之亡也, 而饋孔子蒸豚, 孔子亦矙其亡也, 而往拜之. 當是時, 陽貨先, 豈得不見? 曾子曰, ‘脅肩諂笑, 病于夏畦.’ 子路曰, ‘未同而言, 觀其色赧赧然, 非由之所知也.’ 由是觀之, 則君子之所養, 可知已矣."

공손추문왈, "불견제후하의?" 맹자왈, "고자불위신불견, 단간목유원이피지, 설류폐문이불납, 시개이심. 박, 사가이견의. 양화욕견공자이오무례, 대부유사어사, 부득수어기가, 즉왕배기문. 양화감공자지망야, 이궤공자증돈, 공자역감기망야, 이왕배지. 당시시, 양화선, 기득불견? 증자왈, '흡견첨소, 병우하휴.' 자로왈, '미동이언, 관기색난난연, 비유지소지야.' 유시관지, 즉군자지소양, 가지이의." 

공손추가 물었다.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을 어찌 의롭다고 하겠습니까?" 맹자의 대답이다. "옛 사람들은 그의 신하가 되지 않을 것이면 아예 제후를 만나지도 않았다. 단간목은 위나라 문후가 자신을 만나러 오자 담을 넘어 피했고, 설류는 노나라 목공이 찾아오자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다. 이는 모두 너무 심한 경우로, 맞부딪치면 만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화는 공자를 만나려고 했으나 무례하게 보일까봐 걱정했다. 대부가 선비에게 선물을 보내면 집에서 직접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나중에라도 그 집 문앞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이 예법이었다. 양화는 이를 이용해서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냈고, 공자도 그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집 문앞에 가서 절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 만일 양화가 먼저 찾아 왔더라면 어떻게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증자는 '어깨를 움추린 채로 아첨하며 웃는 것은 한여름에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다.'고 말했으며, 자로는 '속 마음은 다른데 같은 말을 할 때에는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말을 보면 군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단간목(段干木): 위(魏)나라 출신으로 자하(子夏)의 제자인데,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으로 등용하려고 헸지만 사양했다. 

** 설류(泄柳): 노(魯)나라의 어진 선비이다.

*** 양화(陽貨): 노(魯)나라의 실권자였던 계씨(季氏)의 가신 양호(陽虎)를 말한다.

**** 증자(曾子): 공자의 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