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도불습유(道不拾遺)
어산(於山)
2018. 8. 26. 14:32
도불습유(道不拾遺)
길 도 아닐 불 주을 습 잃을 유
길에 떨어진 재물을 줍지 않는다.
즉 나라가 태평하고 도덕이 바로 서 길에 재물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
☆ ★ ☆
중국의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막강해진 것은 법가(法家)사상을 채택한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효공(孝公)이 상앙(商鞅)*을 기용해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한 변법(變法)이 크게 기여했는데,
형벌이 너무 가혹해서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심지어 태자와 상앙 자신의 스승도 예외 없이 법에 따라 처벌했다.
그는 치안유지 및 지배체제의 확립을 위해 호적제도를 대폭 정비한 후 5호, 10호 단위로 묶어 이웃을 감시하고
법을 어기는 행위가 있으면 고발하게 하는 연좌제를 실시했다.
行之十年, 秦民大說, 道不拾遺, 山無盜賊, 家給人足. 民勇於公戰, 怯於私鬪, 鄕邑大治.
1행지십년, 진민대열, 도불습유, 산무도적, 가급인족. 민용어공전, 겁어사투, 향읍대치.
법 시행 후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과 산적이 없어지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만족하였다.
백성들은 전쟁에 나아가서는 용감하지만 자기들끼리는 두려워 싸우지 않았다.
온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주] *본명은 공손앙(公孫鞅)으로, 위나라를 쳐서 굴복시킨 공으로 상오(商於)를 식읍으로 받고 상군(商君)에 봉해져 상앙(商鞅)이라고 불렀다. 후에 반대파가 모반죄로 몰아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