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형석양서(衡石量書)

어산(於山) 2018. 8. 25. 14:01

형석양서(衡石量書)
저울대 형   돌 석   헤아릴 양   글 서



저울과 추로 무게를 달아 미리 문서의 양을 정해 놓는다는 뜻으로,

그날 읽을 문서의 양을 정해 놓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중원을 통일한 후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다.

황제는 중국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화 속의 3황5제(三皇五帝)에서 황과 제를 따서 자신이 만든 합성어이며,

시황제는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이다.

그는 즉위 후 체제를 정비하고 만리장성과 함양궁(咸陽宮)*을 짓고,

자신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후생(侯生)과 노생(盧生)은 황제가 고집은 세고 난폭하며 자기만 내세우는 데다가.

제후에서 일어나 나라를 통일한 후에는 아무도 자신을 능가하는 자가 없는 것으로 자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天下之事無小大皆決於上, 上至以衡石量書, 日夜有呈, 不中呈不得休息. 於權勢至如此, 未可爲求僊藥.
천하지사무소대개결어상, 상지이형석양서, 일야유정, 불중정불득휴식. 어권세지여차, 미가위구선약.


대소사를 모두 황제가 결정하므로 스스로 읽을 문서의 중량을 저울질해 하루치를 정해 놓고,

마치지 못하면 쉬지도 않는다.

이토록 권세를 탐하니 그를 위해 불로장생약을 찾아서는 안 된다.



[주] *진(秦)나라 황제의 궁전.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가 함양에 진입하면서 소실되었다.